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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우리 농업과 농촌 살리는 큰걸음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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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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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흙살림운동을

도시농업, 우리 농업과 농촌 살리는 큰걸음
안철환(전국귀농운동본부 출판실장, 안산텃밭지기)

흙살림에서 펼치는 2007년 캠페인 ‘도시에서 흙살림운동을’ 총론격인 글을 싣습니다. 오랫동안 안산에서 도시텃밭을 가꾸어오면서 귀농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안철환 씨의 기고를 싣습니다. 흙살림은 앞으로 꾸준히 도시농업을 위한 농자재 공급, 농사기술, 도시농업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해나갈 것입니다. (편집자 주)
도시농업은 농촌살리기가 주 목표
도시 사람들도 농사지어 밥상 자급률을 높이자는 도시 텃밭 가꾸기 운동을 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농촌에서 농사짓는 분들 중에 “도시 사람들까지 농사를 지으면 우리는 뭘 먹고 사느냐?”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고자 도시 텃밭 농부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항목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위의 문제제기와 관련된 것은 텃밭 농사 후 외식, 육식의 비율 변화와 수입 농산물과 유기농산물 이용 비율이었습니다.
결과를 보면, 텃밭 농사 후 외식과 육식의 소비가 줄었다는 분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고, 또한 텃밭 농사짓는 분들은 수입농산물 소비 비중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곧 텃밭 농사 후 국산농산물 이용이 늘고 고기 소비가 줄었으며 텃밭 농부들 반 이상이 유기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분들을 조사한 것도 아니고 전문 설문 기관을 통해 한 것이 아니어서 신뢰도가 높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텃밭 농사를 하는 분들은 국산농산물과 유기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안산의 ‘바람들이 농장’에서 텃밭 농사를 하다 농촌으로 귀농한 분이 4년 동안 15가구가 있었습니다. 연평균 서너 가구가 귀농한 셈이지요. 이 가운데 다시 도시로 돌아온 사람은 1가족이 있고 시골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할만한 사람은 제가 보기에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지금도 힘들게 고생하면서 농부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현재 삶에 대부분 만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정도의 성과라면 저는 감히 도시농업이 우리 농업을 살리는 데 일조할 것이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도시농업이 우리 농업과 농촌 살리기를 주된 목표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도시 속 생산이 참된 소비자 길러
사실 도시농업 발생의 배경을 보면 급격한 산업화와 그로 인해 농업이 붕괴되어 그 반사작용으로 비롯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말하자면 흙으로부터 멀어진 도시인들의 일종의 회귀본능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진국들의 도시농업은 취미와 여가선용이 주된 기능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작년에 일본 도시농업 현장을 견학 갔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깨끗하게 잘 가꿔지고 법적 제도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농원들인데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성을 느끼기에는 힘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선진국형 취미, 여가선용 농장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한국의 도시농업은 도시 사람들만 잘 살자는 운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제 중에는 분명 도농교류를 통한 도농공동체 실현 운동이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도농교류와 다른 것은 단순히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일방적 직거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 사람들도 스스로 생산에 참여할 때 참된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도시 속에서도 나름대로 생산 공동체, 곧 텃밭 공동체와 같은 운동을 실천할 때 농촌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일방적인 소비자로서만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은 시장의 원리와 돈에 의해 그 관계는 왜곡될지 모릅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과 함께 하는 삶
다음으로 도시인은 끝까지 흙과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농촌을 이해하고 우리의 농업을 살릴 수 있다 하기 힘들 것입니다. 도시에서도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과 함께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농촌과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의지와 힘이 나올 수 있다 생각합니다. 부분적이겠지만 도시에서도 소비자들이 농부다운 삶을 살 때 실천적인 힘이 나온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의 도시농업은 전 국민이 농부의 삶을 사는 곧 흙과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리 농업이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고 농사짓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 농업을 살리는 방법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농부의 삶을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현재 귀농운동만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농사 자체에 너무 무지합니다. 농사 용어도 잘 모르거니와 단순한 재배법, 거름 만들기, 흙 일구기도 모릅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귀농을 하면 시행착오가 너무 크고 정착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기 십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농업은 귀농의 전 단계로서 영농 실습하는 데 손색이 없는 기회가 됩니다.
다음으로는 도시사람들에게 우리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웰빙이라는 새로운 소비 경향도 본질적으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래가지고서는 우리의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건강한 소비자이기 힘듭니다. 방법은 스스로 생명을 가꿔보고 그 일의 소중함을 스스로 느껴보게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하는 소비자 운동을 도시농업이 벌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비자들이 우리의 시장을 주도해야만 우리농업을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시골농부들이 도시농부를 가르치자
저는 우리 텃밭 회원들에게 꼭 이런 당부의 말을 드립니다. 회비를 내고 분양받은 땅에서 뭔가 빼먹겠다는 요량만 가지고서는 농사를 오래 하기 힘들다, 결과물을 얻고자 하기보다 작물이라는 생명을 가꾸고 그로써 작물의 터전인 흙을 살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때 참 농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서 건강한 먹거리를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수확을 제대로 해야 흙도 살고 생명을 가꾸는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김장 농사를 지어 김치를 겨우내 즐기는 동안 밭의 흙도 겨우내 좋은 흙으로 변신해 간다고 말이지요. 장마철 때를 놓쳐 잡초밭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질려 가을 김장 농사를 포기한 흙은 확실히 척박하기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거름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보면 도시인들은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여 자연을 오염시키는 죄를 늘 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요긴한 자원과 거름으로 재활용한다면 이는 거룩한 양심선언일 것이라 말합니다. 그 중에 오줌과 음식물쓰레기의 거름 만들기를 가장 강조합니다. 극소수지만 똥까지 받아와 거름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시골의 농부님들은 생산한 먹거리만 파는 게 아니라, 도시의 아마추어 농부들에게 재배법, 거름 만드는 법, 흙 일구는 법 등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씨앗도 나눠주고 또 때로는 농사에 필요한 농자재를 직접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관계가 돈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아닌 뭔가 다른 필요를 서로 충족하며 정을 쌓아가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알아가는 도농공동체를
실제로 현재 충북 괴산 흙살림감물지회에서는 벼농사를 짓는 도시텃밭 회원들에게 매년 벼 모종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흙살림 연구소에서는 늘 도시농부들에게 연수 공간으로 언제나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으며 각종 유기농자재를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땅이 없어 작물 화분을 키울 분갈이 흙도 개발하여 많은 도시사람들이 텃밭 가꾸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가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가을 한마당 같은 자리에 가서, 검게 그을린 얼굴의 뭔가 활기차지 못한 생산자님들을 볼 때면 속이 상하곤 했습니다. 저는 생산자로서 소비자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자연을 책임지는 자부심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돈 받고 물건을 파는 관계 이상으로 뭔가를 베푸는 입장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덤을 더 주자는 얄팍한 상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주자는 것이지요.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흙과 농부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거꾸로 도시농부들도 마찬가지지요. 돈 주고 팔아주어 목에 힘주는 게 아니라 생산의 선배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듬뿍 준다면 그 또한 큰 덕이 될 것입니다. 하여튼 저는 그런 도시농부들과 농촌의 농부님들이 하나가 된다면 우리 농업은 분명 희망이 넘칠 것이라 확신합니다.
2007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