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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은 농촌이나 어촌, 산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간에 귀농은, 혹은 귀촌은 선주민 사람들이 먼저 터를 잡고 살아가는 어떤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선주민들은 그 마을에서 누대에 걸쳐 정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외진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
사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을이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왜냐하면 도시는 기본적으로 각 가정이 고립되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동물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음침한 도시 뒷골목의 그래비티(낙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시 개발자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도 도시에서는 마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는 공동체에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농촌 마을은 어떨까요? 농촌 마을 뒷골목에도 심란한 낙서들이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는 익명성으로 살아가는 곳이지만 마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누구나 나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따라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곧 익명성의 공간에서 공동체 속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마을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우리나라 어느 농촌이든 마을은 애초부터 국가나 관청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농촌 마을은 우연한 기회에 그 자리를 선택해서 함께 모여 살던 사람들이 스스로 일군 터전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우물을 파고 골목골목 길을 내고 아이들 가르치는 서당을 만들고 노인들의 쉼터를 만드는 그 모든 일을 마을 주민들이 같이 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마을의 지도자도 스스로 뽑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약도 만들었습니다. 향약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농촌의 마을은 규모는 매우 작지만 그 자체로 일종의 자치독립공화국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잔영이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일례로 도시 사람들은 농촌에서 마을의 이장이 왜 그렇게 큰 권력을 행사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마을 이장은 국가나 지자체 권력과는 무관하게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면장이든 군수든 심지어는 도지사라 할지라도 이장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뽑은 지도자이고 봉사에 대한 사례금도 주민들이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이장이 수백 년 전에는 촌장이었겠지요. 어쨌든 마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국가의 공권력 관계에서도 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귀농하거나 귀촌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마을 속에서 갈등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일이 농촌에서는 심각한 일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어울려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불편한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귀농귀촌 하기 전에 농촌 마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습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왕도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