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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연이 시작되는 경칩(驚蟄) 무렵에 장(醬)을 담근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양기를 북돋우고 긴 겨울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이 봄에 간이 하는 역할이다. 간의 그런 역할을 한의학에서는 소설작용이라 하는데 이 소설작용을 돕고 맺힌 것을 풀어주며 가라앉는 기운을 위로 끌어올리는 일을 하는 것이 매운맛이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춘에는 매운맛을 가진 나물 다섯 가지를 골라 먹어온 풍습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입춘오신반’을 나눠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천금요방>을 저술한 당나라의 유명한 양생가 손사막도 봄에는 신맛을 줄이고 단맛을 많이 먹어 비장을 보해야 하며 인체가 적절히 운동을 하면 병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봄에는 산책을 자주 하고 맵고 쓴맛을 가진 햇나물들을 새콤달콤하게 요리하여 먹으면서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체를 건강하게 하는 봄의 전령인 갖은 새싹과 들나물을 새콤달콤하게 조리해서 먹으려면 반드시 적당한 무침용 양념이 필요한데, 무침용 양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에서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이다.
작년엔 가을에 윤달이 들어 2015년 올해의 경칩에는 정월장을 담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해에는 음력으로 2월에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의 절기가 있다. 음력 2월은 봄의 두 번째 달로 한창 무르익는 봄이라 하여 감춘(?春) 혹은 중춘(仲春)이라고도 부른다. 요즘 항간에서는 음력 2월에는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세한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근거가 없는 낭설임이 분명하다.
반찬이 변변찮았던 시절 선조들의 밥상을 차리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양념이었을 장(醬), 그래서 일 년 농사 중 가장 먼저 꼽아 담아왔던 장(醬)은 음력 정월의 말날에 담그면 큰 탈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개의 농가에서는 경칩(驚蟄) 무렵 농사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장 담그기를 해왔다. 경칩 무렵인 지금까지 아직 장을 담그지 못했다면 아직은 늦지 않은 때이므로 장 담글 준비를 시작해도 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