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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종자 농가 - 평창 전흥탁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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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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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전흥탁(58) 자급종자 농가
종자! 사다가 심으면 된다. 보급 종자라면 재배법도 가르쳐준다. 교육받거나 매뉴얼화 된 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그럭저럭 수확도 거둘 수 있다. 농사일이 편한 게 있을까마는 그래도 채종한다고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새로운 농사법을 개발한다며 이리저리 궁리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면 편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평탄한 길을 놔두고 기어이 가시밭길을 가겠다는 농부들이 있다. 무슨 이유일까. 흙살림이 자급종자 농가를 찾아가 봤다.
■ 목표가 있어야 육종이 있다
강원도 평창의 금당계곡 근처.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집에서 경축순환농법을 하고 있는 전흥탁(58)씨의 비닐하우스 안에선 다양한 벼들이 자라고 있다. 흙살림 토종농장에선 매년 40종 이상의 토종벼를 심어오고 있던 터라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개인 농가가 단일 품종이 아닌 자가 육종해온 다양한 벼를 재배하는 모습은 결코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이 벼는 냉수답에서 나온 것이다. 찬물이 나오는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결실맺은 것을 종자만 받아서 심어봤다. 겨울이 긴 평창에서 빨리 수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 씨는 자가육종의 장점을 자신이 세운 목표치에 근접하도록 품종을 유도한다는 점에 두고 있다. 그가 주로 재배하고 있는 벼는 찰벼로써 유기농에 적합한 종자로 육종하고 있다. 즉 목표를 유기농에 두고 그것에 적합한 종자를 선택, 발굴해 낸다는 것이다. “이건 25년 전쯤 논이 전부 도열병에 걸렸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벼다. 그때엔 오대벼인줄 알고 선발 육종했었는데 그게 지금의 찰벼로까지 이어지게 된거다.” 그의 육종비결은 바로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악조건 속에서 변이가 일어나고 이것이 목표하는 육종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사로 여길 것은 없다
그가 키우고 있는 보리와 밀은 경축순환형으로 소의 사료로 쓰기 위한 것이라 까락없이 키우는 것이 목표다. 밀의 경우엔 하우스 안쪽에 우연히 자란 한 이삭이 계기가 되어 현재와 같은 다양한 품종으로 늘어났다. “보통 밭 안에 밀 하나가 있으면 로타리를 쳐서 없애버리는 게 예사다. 하지만 난 그걸 보존해서 심어왔다. 밀의 생명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이것이 세대를 거친 어느 순간 까락없이 이삭을 맺기 시작했다.” 까락없는 밀은 사료용 종자로 사용하기 좋아 농촌진흥청에 보내기도 했다.
벼의 경우엔 밤색을 띠는 흑향미가 있었는데 소비자가 까만색을 좋아해, 이 중 까만 변이만을 골라 심으면서 검정색 흑향미를 육종했다. 자가종자란 도태와 변이의 반복이라는 것이 전 씨의 설명이다.
■ 종자는
그런데 전 씨는 어떻게 해서 자가 육종을 할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는 약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전 씨가 제대를 하고 고랭지 양상추를 재배하던 때였다. 고랭지 양상추 가격이 좋아 해발 550미터 목장에 양상추 씨를 뿌렸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다. 이유는 종묘회사가 묵은 씨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씨를 받아 다시 키워보니 뜨거운 여름에도 잘 됐다. “이때 종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10여 가지 종자를 시험 해보고나서 2가지를 선택해 월동했다.”
종자의 중요성을 깨달을 즈음 유기농협회와 정농회 교육을 통해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알게됐다. 이것은 곧바로 유기농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전 씨의 최종 목표는 자연농이다. 그래서 그의 육종의 목표도 자연농에 알맞도록 저투입을 넘어 무투입을 해서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입은 적은데 수량이 늘어날 때 진정 지속가능한 농업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바람은 개인 농가가 해내기엔 비록 벅찬 일이기는 하지만 많은 농가들이 자급 종자 운동을 펼쳤으면 하는 것이다.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발전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이 종자에 관심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항상 관찰하고 찾아내야 한다. 개량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그의 소망대로 자급 종자 농가가 한여름 옥수수가 자라듯 쑥쑥 퍼져나가기를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