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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농가 탐방 – 안광진(고추/ 충북 괴산)
"유기농을 하려면 풀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25년간 유기농 고추를 재배해 온 안광진 농부의 확고한 철학이다. 그는 풀을 잡초가 아닌 땅의 일부로 여기며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밭에서 자라는 모든 풀은 밭에 그대로 갈아엎어 퇴비로 사용한다. 그는 풀이 작물보다 우위에 있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면 작물도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는다. 풀을 제초제로 없애지 않고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땅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유기농 토종 고추 -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
안광진 농부는 50년 고추 농사 경력의 베테랑이다. 25년 전, 유기농이 생소하던 시절 '농사를 짓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건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유기농 고추 재배에 뛰어들었다. 친환경인증기관에서 친환경 고추재배는 어렵다며 만류했지만, 그의 도전정신을 꺾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노지에서 시작했지만, 8월에 찾아오는 탄저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당시엔 마땅한 친환경 농자재가 없어 보르도액을 방제용으로 썼는데, 고추에 보르도액이 하얗게 묻어나 수확 후에 식초물로 씻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결국 하우스 재배로 전환했지만, 이번엔 벌레 피해가 극심했다. 그래서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찾기 시작했고, 토종 고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토종고추가 하우스에서 열매가 잘 달리지 않아 실패했지만, 3년 동안 잘 열리는 나무를 선발하고 종자를 채취하면서 4~5년 후에는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 이렇게 시작한 토종고추 농사는 지금도 전국에서 종자를 수집해 약 15종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 현재는 재배하는 품종 중 절반은 맛이 좋은 토종품종 수비초다.
땅심 살리기 -때론 넘치듯 때론 부족하듯
안 농부의 고추밭은 유기물 함량이 3.5~4%에 달해 흙을 밟으면 푹신푹신하다. 이러한 건강한 땅은 그의 특별한 토양 관리법 덕분이다. 고추 수확이 끝난 후에는 고추대를 그대로 밭에 두고, 11월에는 녹비 작물인 청보리 씨앗을 뿌려 키운다. 이듬해 2월 말에는 2~3일간 담수를 한 뒤 물을 빼고, 3월에 고추대와 청보리를 모두 갈아엎어 퇴비로 활용한다.
안 농부는 또 고추 정식 전에 평당 4~5kg의 흙살림 균배양체와 구아노가 들어간 유기질 비료를 밑거름으로 충분히 준다. 재배 기간 중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퇴비차를 관주로 사용한다. 그는 고추가 후기에 거름이 많으면 착색이 덜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양분이 조금 부족하다 싶어야 병해충 피해도 적고 착색에도 좋다는 것이다.
고품질 고추가루 – 자신만의 방법 찾기
안 농부는 주로 고추가루를 판매하고 있다. 유기농 초기엔 태양광 고추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곰팡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지금은 건조기를 이용해 고추를 말린다. 일반적인 건조 방법 대신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건조 방법을 완성했다.
먼저 완전숙성된 고추를 건조기에 넣고 55℃에서 4~5일 가량 건조시킨 후 45℃에서 하루 반~이틀 정도 추가로 건조시킨다. 너무 고온이면 고추가 까매지고, 저온이면 쭈글쭈글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일주일가량 고추를 건조시키면 고품질의 고추가루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소비자와의 믿음 - 욕심을 버리면 얻는다
안 농부는 고추의 광택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광택이 좋은 고추는 병충해를 막기 위한 보호막이 두꺼워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맛있는 고추는 필름 막이 얇고 과육이 많아 건조하면 다소 쭈글쭈글해진다. 그는 소비자들이 이 점을 알고 선택하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고품질의 고춧가루를 생산해 소비자와의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기농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목표량에 맞추기보다 자연이 주는 대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점점 고추가루 소비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20년 이상 단골 고객도 구입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농가 입장에서는 수량이 줄더라도 고품질의 고추를 생산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풀을 적대시 않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농사. 빨갛게 익어가는 안광진 농부의 고추가 건강해 보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