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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농가 탐방 - (전남 무안 고구마) 김기주 김현희 부부

비 갠 무안군의 앞바다 끝은 빨갰다. 황토가 쓸려 내려가 갯벌에 쌓였기 때문이다. 전남 무안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김기주 씨는 이를 ‘내주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갯벌에 황토를 내주어 적조를 예방하고 양분을 공급하며, 갯벌은 해양생물들을 사람에게 내주어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농사 또한 이 ‘내주는 마음’이라는 것이 김기주 씨의 생각이다.
■ 고구마 20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황토밭에선 한창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속에서 유독 한 명만이 맨발로 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김기주 씨였다.
1997년 고구마 농사를 시작해 올해로 벌써 22년째다. “1970~80년대 고구마는 구황작물이었다. 무안의 대표작물인 양파나 마늘에 비해 제값을 받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건강식품으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고구마 농사를 결심하게 됐다.”
고구마는 처음부터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했다. 정농회 활동을 하면서 농약 피해 사례를 접하고 땅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 해수 농법
친환경으로 고구마 농사를 짓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굼벵이 피해가 심각했다. 어떻게 하면 굼벵이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래서 다다른 것이 바로 바닷물과 소금을 이용하는 해수 농법이었다.
굼벵이 피해가 심한 곳은 200평에 20㎏ 정도의 소금을 뿌렸다. 또 다른 해충 피해를 막기 위해 바닷물을 100배 희석해 엽면시비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은 흙살림의 BT제인 청달래 등을 쓰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피해를 줄였을 뿐만 아니라 고구마의 당도가 올라가고 저장성도 좋아졌다. “소금은 작물뿐만 아니라 사람·동물에게도 꼭 필요한 것 아닌가요?”
■ 밀 뿌리의 여행
친환경농법은 땅을 살리는 노력을 많이 한다. 김기주 씨 또한 다양한 녹비작물을 심어왔다. “연작장애를 예방하고 옥토를 만들어주는 데 밀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밀을 수확하고 밀대는 태워서 땅에 넣어준다. 잘 퍼져나가는 밀 뿌리는 미생물 먹이와 산소공급에 탁월하다. 하지만 단점은 고구마에 비해 경제적 소득이 1/1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땅과 고구마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정부에서 매뉴얼화 하고 손해를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 제도 등을 도입했으면 좋겠다.”
이외에 양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퇴비와 유박을 필요한 곳에만 조금 사용한다. 퇴비는 토착미생물과 쌀겨, 깻묵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들고 있다.

■ 공동체 ‘애농’
김기주 씨의 친환경 고구마 농사가 알려지면서 주위에서 농사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그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재배 노하우를 알려주며 공동체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귀농자 중심의 7~8 농가가 모여 ‘애농’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됐다. 판로를 공동으로 개척하면서 올해 600톤 판매 계약을 이루었다.
공동체는 매주 농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은 물론 남성 중창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년간 고구마를 키우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육묘와 가공 부분이다. 공동체를 통해 이 부분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 감사의 마음
김기주 씨의 고구마는 잘 생겼다. 하지만 다 잘 생길 수는 없다. 특히 친환경 농사로 겉모습을 번지르르하게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진열된 것만을 찾다보면 버려지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감사의 마음’이다. 생명을 키우고 엮어서 식탁에 올리는 과정 모두를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농산물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농부의 마음을 담아낸 것이 윤동주의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고 한다.
“(상략)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그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