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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정착기<11> 서천 농장의 여름나기
흙살림 조회수 1,608회 19-08-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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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마가 지나고 나니 제대로 폭염이 시작되었다. 바늘처럼 내리쬐는 햇빛에 높은 습도를 더하니, 하루 종일 한증막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하우스 안은 천창과 측창을 모두 열어도 기본으로 40도는 항상 넘는다. 새벽에 하우스로 출근해 일을 하다보면 아침 8시부터 뜨겁다고 느껴지는 온도로 바뀌다가 10시가 되면 도저히 참지 못해 하우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소나기라도 한차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람에게 가혹한 날씨는 작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 시간에 물을 주고 있지만, 매일 어김없이 해가 산 위로 올라오는 시간부터 모종들이 고개를 숙인다. 처음에는 이러다 죽을까봐 차광막을 쳐야 하나, 흙에 물을 좀 더 적셔줘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해가 지면 다시 바로 서는 것을 보면서 식물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뿌리가 있는 모종들은 열심히 한낮 무더위를 견디고 있지만 문제는 새로 삽목을 하고 있는 삽목주들이다. 요즘 겨울 재배를 위해 한창 민트와 타임을 삽목을 하는 중이다. 기존에 심어놓은 모종들의 양이 많지 않아 삽목이 가능한 부분을 채취한 후 다시 자랄 때까지 약 2주 정도 걸리기 때문에 거의 2주에 한번 꼴로 삽목 작업을 하고 있다. 뿌리가 없는 줄기가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내려면 온도와 습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폭염 기간에는 여건이 좋지 않아 보통 다른 농장에서는 봄과 가을에 삽목주를 만든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겨울에 생산하려면 가장 더운 지금 시기에 반드시 삽목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삽목을 하는 날에는 새벽시간이나 저녁 늦은 시간을 이용해 하고 있지만, 중간에 한줄기라도 햇빛을 직접적으로 보게 된 민트나 타임은 어김없이 줄기와 잎이 말라버리고 만다. 뿌리가 날 때 까지는 햇빛을 보지 않고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 놓고 물이 마르지 않게 자주 줘야 하는데, 만약 물이 빨리 증발이 안 되고 일정 습도가 넘어가버리면 곰팡이가 생기고 만다. 육묘장에 합판이나 차광막, 제초매트로 만든 그늘은 햇빛은 직접적으로 받지 않지만 온도가 높고 바람이 없어 물이 잘 마르지 않아 문제였다.

그래서 하우스 밖에 삽목주를 거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제초매트를 깔아서 해충의 유입은 크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어, 그 위에 흙벽돌을 쌓아 건물처럼 바닥과 기둥을 만들었다.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천장과 커튼 역할을 하는 비닐을 끼우고 나니 바람도 잘 통하고, 물도 벽돌 틈으로 잘 빠져나가는 하루 종일 시원한 장소가 완성되었다. 삽목 후 이 곳에 옮겨 놓으니 생존율도 훨씬 높아졌다. 다음 달 정도면 하우스 1, 2동을 모두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요즘은 한창 바질을 수확하고 있다. 올 봄에 재배했던 고수, 루꼴라와 달리바질은 온도에 정말 예민한 허브이다. 하우스 안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민트, 타임과 달리 바질은 여름을 보내면서 상태가 썩 좋지 않게 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특히 수확을 하는 도중에 잎에 손이나 가위가 닿을 경우 얼마 안가서 그 부분이 갈변이 되어버린다. 수확 후에는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도록 보관해야만 한다. 그래서 하루 전에 미리 수확을 해놓지 못하고, 납품하는 당일 새벽에만 수확을 하고 있다. 최상단 6장의 잎모양이 보이도록 수확한 바질은 바로 10도 정도로 설정된 저온저장고에서 냉기를 머금게 한 후 배송된다.

로즈마리와 레몬타임은 한참 전 분갈이를 마치고 키도 커지고 곁가지도 많아졌다. 하지만 분갈이를 할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검은색 화분을 사용한 것이다. 가장 더웠던 시기에 몇 개의 로즈마리 가지가 일부 마르는 현상이 보였다. 뿌리를 꺼내보면 다른 화분과 비교했을 때 다소 부실해 보였다. 그러던 중, 여러 가지 허브를 재배하고 계신 다른 허브농장 선생님들께서 방문해주셨는데 ‘검은색 화분’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하얀색과 비교했을 때 검은색이 빛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어 훨씬 빨리 뜨거워지기 때문에 흙에 물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화분이 뜨거워지면 뿌리가 삶아질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특히 내가 키우고 있는 로즈마리와 레몬타임은 비닐재질의 얇고 검은색 화분에 심어져 있으니 한낮에 기온이 오르면 더 빨리 뜨거워졌을 것이다. 화분은 다음 분갈이 때 두꺼운 흰색 화분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소한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글 이수진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