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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따스함은 시나브로 들숲 언저리를 녹인다.

매화 망울이 터지는 3월의 나날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가득하다. 볕이 잘 드는 밭 가장자리에는 보송보송한 솜털 가득한 쑥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마을 어귀 화단에는 작년에 봤던 수선화가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 긴 겨울 추위 속에서 떨었던 고수와 루꼴라는 아직 여름도 안 되었는데 이전보다 두 배는 더 빨리 자라나는 듯하다. 한 낮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할 때면 벌써 짧은 소매 옷을 입고 긴 바지를 접어 올려야 할 정도이다.

날이 풀릴수록 초보 농부의 하루는 점점 길어진다. 먼저, 겨우 내 멈춰 있던 과수원 관수시설도 정비했다. 작년 가을 모터에 찼던 물을 모두 빼고 보온재와 비닐로 잘 동여매었지만 4개의 모터 중 2개가 터져버렸다. 문제의 원인은 온도차로 인한 결로가 원인이었다. 나름 월동 준비를 했지만 밤낮의 기온 차이로 모터 내부에 결로가 생겼고, 그 물방울들이 모여 얼어붙으면서 모터 일부가 파손된 것이다. 모터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파이프도 일부 손상되어 있었다. 혹시나 꽃샘추위 동안 모터가 다시 얼까 염려 되어 시설 수리는 조금 미루기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모터 덮개를 만들어 씌우거나 보온재를 좀 더 여러 겹 덮어야만 할 것 같다.
더 따뜻해지면 노지에 심어야 할 채소 및 허브 모종들과 수확 후 빈 하우스에 새로 허브를 파종하기 위해 종자들도 넉넉히 준비했다. 서울에서 열렸던 농산물 직거래 장터의 ‘씨앗 나눔’ 이벤트에 참여하고 받은 여러 가지 토종 씨앗들과 화원에서 구입한 꽃씨들도 모아 놓았다. 3월 안으로 파종이 모두 끝난 뒤, 밭과 육묘장 돋아날 새싹들이 일렁일 생각을 하니 새삼 가슴이 뛴다. 봄이 왔구나! 어느 새 봄 햇살은 사방에 내려앉아 초록빛으로 쌓이고 있다.
바쁜 일상이 계속 되고 있지만 하루 시간을 내서 옥천 나무 시장을 방문했다. 처음 알게 된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화초들로 가득한 신세계를 마주하여 정신이 없는데, 엄청난 인파로 북적여 한걸음 내딛기가 어렵다. 오래 전부터 꼭 키우고 싶었던 푸룬 묘목을 구매했다. 대학생이었을 때, 처음 독일에 도착했던 8월, 마트마다, 시장 과일가게마다 가득했던 푸룬 생과를 보고 참 신기했었다. 가격도 다른 과일보다는 저렴해서 가을까지 즐겨 먹곤 했다. 그 달달한 맛과 쫀쫀한 식감이 한국에 온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나서, 이 나무는 언제 수입되나 귀농 준비를 하는 중에도 몇 번이나 찾아봤었다. 지금은 점점 더 많이 보급 중이어서 온라인으로 푸룬 생과를 판매하는 농가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한차례 비가 내린 후 밭을 갈기 위해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기를 대여하여 밭을 갈았다. 기계를 다루는 일은 나름 큰 작업이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청년 농부 네 명이 모두 모였다. 1톤 트럭에 사다리를 대고 관리기를 올리고 내리는 일도 큰일이고, 관리기를 몰고 가다 유턴하거나 좌,우회전 하는 것이 새내기 농부들로서는 참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래도 반나절 내내 갈아서 포슬해 보이는 땅을 보니 뿌듯했다. 현재의 허브 하우스 자리는 작년까지 논이었던 땅이라 하단부에 산 흙을 들여 성토를 하였지만 아직 물빠짐이 좋지 않고 색도 거무튀튀하다. 올해에는 서천 친환경 쌀 재배 단지에서 볏짚과 왕겨를 구해 잔뜩 갈아 넣을 계획이다. 밭 한켠에 조그마하게라도 퇴비를 만들어 쌓아 보는 것도 작은 목표 중 하나이다. 올 봄, 많은 계획들 속에 한해 농사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던 만큼, 가을걷이까지 즐겁고 순탄하게 땅을 일궈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글 이수진 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