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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는 겨울 생육 기간을 잘못 계산해 지난 달 출하하지 못했던 하우스 안 루꼴라와 고수를 수확해 출하를 했다. 겨울에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고맙게도 허브들이 초보 농부의 어설픈 손길과 함께 잘 자라 주었다. 추운 계절이라 해충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파나 하우스 안팎 온도차이로 인한 과습 문제 때문에 작물들을 관리하기가 많이 까다로웠다. 온도가 최고로 올라가는 오후 시간에 한번 씩 하우스를 개폐하여 습기를 말리면서도 혹시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연한 잎들이 상하지나 않을까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현재 재배하고 있는 루꼴라와 고수 외에 바질과 로즈마리 재배를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다. 다양한 허브들로 더욱 향기로워 질 농장의 봄을 상상할 때면 새삼스레 마음이 설렌다.
2월에는 곧 움트기 시작 할 블루베리도 관리해야만 한다. 좀 더 튼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 틈틈이 겹꽃눈도 따주고 약한 가지들도 미리 잘라줬다. 땅이 녹기 전에 블루베리 전지 작업을 해주면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이 약한 가지를 키우는 데 나뉘지 않아 열매도 더 좋아지고 꽃샘추위 찬바람도 더 잘 이겨낼 수 있어 동해 피해가 감소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로 얇은 1년생 가지 속에서 동면하는 갈색매미충의 알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전지 작업은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이 된다.
농장에서 일하고, 농장 옆에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특권 중 하나는 하루 종일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에는 도시에서는 듣기 어려웠던 모습들과 소리들이 가득하다.
겨울밤에는 고라니의 울음소리와 부엉이소리가 들린다. 고라니 울음소리는 마치 사람이 내는 비명소리 같아 처음엔 조금 섬뜩했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멧돼지 가족이 살고 있으니 산에 갈 때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아직 마주친 적은 없다. 다만 지난 가을에 동면에 들기 직전이 가장 무섭다는 독사를 몇 번 마주쳐 놀란 적이 있다. 아직은 간편한 운동화를 착용하고 산을 다니지만 개구리와 뱀이 깨어날 때부터는 꼭 장화를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우스나 블루베리 밭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낮 시간에는 마을에 살고 있는 매를 자주 보게 된다. 항상 같은 시간에 두세 마리씩 넒은 하늘을 선회하며 높은 고음의 소리를 낸다. 한편 아침 식사시간마다 방문하여 뒷마당에 묻어 놓은 과일 껍질을 꺼내 먹는 떼까치들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한 마리만 오더니 점점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사람과 마주쳐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지역에 살고 있는 새들 중에서 블루베리에 가장 큰 피해를 준다고 하여 블루베리 농가에서 많이 미움을 받는 새이자, 서천에 블루베리 방조망 시설을 보급시킨 원인이 된 새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참새나 박새, 곤줄박이들은 사람과는 친하지 않아 항상 자기들끼리만 놀지만 하루에 한번 이상 마주칠 정도로 흔한 이웃들이다. 사계절 내내 숲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딱따구리 소리도 경쾌하다. 늘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자연의 축복을 마주할 때마다 이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계속 될 수 있도록 잘 아끼고 돌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글 이수진 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