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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정착기<4>겨울에도 청벌레가 스멀스멀
흙살림 조회수 348회 19-02-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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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1월, 마을엔 따뜻한 정이 자라고, 과수원엔 새로운 묘목이 자라고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에는 조용하던 마을 전체가 부산해진다. 12월 마지막 주 중 하루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마을 총회가 개최되고 1월 첫 주 중 하루는 회관에서 큰 솥에 떡국을 끓여 나눠 먹는다. 특히 1년에 한번 열리는 마을 총회는 평소엔 바빠서 회관에 왕래를 거의 안하시는 분들도 대부분 참석하시기 때문에 마을 행사들 중 가장 크게 개최된다고 한다. 행사 준비를 위해 소소한 일들을 도와 드리며 마을 어르신들과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1월에 들어서, 집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아직 행정적으로 준공 절차가 남았지만, 농장 일을 하는 틈틈이 내부 마무리 작업도 할 겸 간단한 짐만 꾸려 임시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마을 안에서 살게 되니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많이 생겼다. 농장이 가까워 일하는 것도 한결 수월해 졌을 뿐 만 아니라 아침 산책을 나오신 이웃 어르신들과 차도 마시고, 가끔씩 기다란 밭을 가로 질러 가서 옆집 아주머니와 음식도 나누곤 한다.

마을 안에는 조그마한 가게도, 식당도 없기 때문에 그나마 가까운 농협을 방문하려 해도 차로 고개 하나를 넘어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이웃 어르신들께서 멀리서 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인근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바닐라 라떼나 제과점 빵, 치킨박스 등을 건네주고 가시곤 한다. 마을에서 제일 막내여서 예쁘게 봐주시는 건지,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느껴진다. 아직 이삿짐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오고 가는 길에 건네주신 두루마리 휴지와 각종 세탁 세제들이 방 한 켠에 탑처럼 쌓여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이웃들과의 교류에서 느끼는 정은 참 따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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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허브 하우스에서는 잡초가 자라고 나는 열심히 루꼴라와 고수 사이에 숨어있는 잡초를 뽑는다. 한 겨울에 조금이라도 온도를 더 높여주기 위해 하우스 안에 자투리 비닐을 연결하여 커튼도 달았다. 마른 풀만 가득한 논밭을 보다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 봄 세상이다. 여름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몇 개의 루꼴라에 스물스물 청벌레가 나타났다. 맨 앞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란 잡초를 뽑는 길에 벌레까지 손으로 잡았다. 그나마 루꼴라에 큰 피해를 입히는 벼룩잎벌레나 나방 성체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봄부터는 바질과 로즈마리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자재들로 어지러운 나머지 하우스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기존의 루꼴라와 고수를 관리하면서 호두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는 과원도 돌보고, 집 내부 작업들도 직접 해야만 하여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봄이 오기 전에 블루베리 묘목을 들여오기 위해 방조망과 밭자리를 고르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작업 중에 겸사겸사 소하천과 닿아 있는 경사면에는 왕벚나무를, 과원 뒤편에는 이팝나무를 심었다. 집 가까운 곳엔 열매를 따기 쉽도록 산딸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새로운 나무가 하나, 둘 늘어날수록 마음은 이미 꽃이라도 본 듯 즐겁다. 굽이굽이 돌아 감기는 과원길을 오르며 연두 빛 봄과 꽃향기를 그릴 수 있는 나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청년농부가 된다.

글 이수진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