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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업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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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정착기<3>?초보 농부가 농장에서 맞은 첫 겨울.
흙살림 조회수 553회 19-01-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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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부산했던 초보 농부가 농장에서 맞은 첫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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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바탕 눈이 쏟아진 후 12월의 혹독한 추위를 맞이했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3중 하우스에 보온에 특화해 만들어졌다는 특수 비닐을 씌웠더니 가장 추웠을 때의 최저온도가 아직 5도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11월, 12월 초에 파종해 놓은 허브들이 아직 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어 다른 때보다 더 일기예보에 신경을 쓰게 된다. 루꼴라는 추위에 제법 잘 견디는 편이지만, 따뜻한 환경을 좋아하는 고수가 특히 더 걱정이다. 지금껏 귀농을 준비해 오면서 항상 봄부터 늦가을까지만 농사를 하고, 겨울에는 쉬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겨우내 시설하우스 안에서 채소를 재배할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요인이나 대처 방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12월 둘째 주, 평소에 잘 챙겨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는 다른 허브 농장 형님들이 방문하셨다. 겨울에 시설하우스에서 신경써야할 부분과 겨울 재배 허브의 특성 등 절실히 필요했던 여러 노하우를 공유해 주셨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봄부터 가을 기간엔 1달 정도 키우면 출하가 가능했던 루꼴라를, 가온을 안 하고 재배하게 되면 2달에서 3달 정도로 자라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했다. 어쩐지 12월 말부터 수확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떡잎이 지고 본잎이 자라는 속도가 늦다 싶더니, 1월 말이나 되어야 생산이 가능할 것 같다. 두둑의 방향도 지난 작기에 심었던 방식과 동일하게 만들어 심었는데, 허브를 잘 키우시는 다른 선배 농업인분들은 겨울에는 두둑의 방향을 반대로 만드신다고 한다. 여름에는 조금이라도 바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두둑을 만들고, 겨울에는 조금의 외풍이라도 막아줄 수 있는 방향으로 두둑을 만들기 위함이다. 농장을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는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또 한 번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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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농장에서의 하루하루는 한창 농번기보다 훨씬 더 바쁘게 흘러간다. 허브 농사 뿐 만이 아니라, 앞으로 거주해야 할 집의 완공을 앞두고 세세한 마감이나 건설 폐기물 처리, 주택 완공 행정 절차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사용하고 남은 단열재가 이웃집 논에 날아가 버리면 쫒아가 주워오곤 한다. 끈으로 묶어 놓아도 이상하게 꼭 하나씩은 빠져서 멀리 날아가 버린다. 집 뒤 경사면에 덮어 놓은 코아매트도 바람에 치여 돌돌 말리는 바람에 다시 펴서 엮느라 손이 여러 번 갔다. 준공 조건 중 하나로, 경사면 아래 화단도 만들어야 했는데, 며칠 동안이나 화단 흙으로 사용하기 위해 꽁꽁 얼어버린 산 흙을 깨서 옮겨오느라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겨울 바람과 추위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언제나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농장도 돌보고, 주택 건축 과정도 돌보는 틈틈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현재 충청남도와 롯데가 함께하는 ‘친환경 청년농부 프로젝트’에 선정된 40대 이하의 젊은 농업인들이 서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거나 대형 유통업체에 직접 키운 친환경 채소들을 출하를 하게 될 경우 개인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전부터 법인 설립의 필요성이 계속 논의되어 왔다. 올해 2기생들이 들어오면서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서천, 보령지역의 청년농부 9명이 모여 독립적인 법인을 만들게 되었다. 다들 농장 운영에 바쁜 와중에도 회의 때 마다 모여 정관도 작성하고, 협동조합,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 등 여러 복잡한 구조와 법인회계도 공부해 가며 준비한 끝에 ‘충남청년농부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하였다. 보통 법무사를 통하면 간단하게 며칠 만에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함께 발전해 나갈 청년농부들끼리 모여 하나부터 열까지 전 과정을 신중히 고민해 가며 결정해 만든 조직이어서인지 더 뜻 깊었다.

2018년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어 돌이켜 보니, 농장과 집, 법인 등 올 한해 기초를 다지고, 초석을 세워가며 시작한 것들이 참 많았다. 이제 시작이니 만큼 2019년에는 준비된 밭에 정식된 모종처럼 더 크고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야겠다. 

글 이수진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