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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지 - 서른 둘의 아가씨, 귀농지를 정하다
흙살림 조회수 765회 18-11-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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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새내기 농부의 귀농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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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본격적인 귀농 준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삼방리 흙살림 유기농 농장에 교육생으로 들어왔다. 아직 봄바람이 채 닿지 않아 마른 풀내음이 가득한 산천을 보며 토종 종자 채종을 할 때엔 처음 경험해 보는 농장에서의 하루하루가 꽤 낭만적이었다. ‘파종’, ‘정식’ 같은 기초 농업 용어도 어렵게 느껴졌던 새내기 농부로서 바쁜 농번기를 맞이하고, 여름 내내 들풀과 다투며 가을걷이의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힘겹기도 했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교육을 마친 후,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정착지를 먼저 알아봐야만 했다. 되도록 교육을 받으며 익숙했던 괴산 근처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서울과 가까워서인지 인연이 아니어서인지 경제적인 상황에 맞는 농지를 구입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조그맣게 농지를 임대하여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연습하면서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농지를 알아보러 다녔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주로 각 지역에 하나씩은 있는 휴양림에 며칠씩 숙소를 잡고 돌아다니며 적합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귀농 전부터 친환경 농업을 생각하고 있었던 지라, 내가 찾는 농지의 조건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먼저 주변에 논, 밭이 없거나, 있더라도 항공, 기계 방제가 어려운 다랑이 논, 밭이 있는 산골짜기 외진 곳을 찾아 다녔다. 또한 인근에 산업시설이 없고 많이 개발되지 않아 최대한 자연 경관이 보존되어 있는 곳을 원했었다. 이런 조건들을 부동산에 이야기하면 그런 곳은 토지정리가 안되어 있거나 도로가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상담해주셨다. 땅을 산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토지의 가치가 오를 확률이 적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

들과 다르게 참 특이한 곳을 찾는다고 웃으셨다.

2016년 말, 충남 서천에서 교육을 받다가 인연이 된 현재 블루베리 멘토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음에 드는 곳을 찾게 되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아쉽지만 평평한 논밭이 아닌 임야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이미 밤, 매실 등 과수도 심어져 있고, 산 위 쪽으로 조그만 밭도 있어 마음에 들었다. 개울 건너 주변에 조각보 같은 다랑이논들이 있긴 하지만 과수원과 밭이 고지대라 어르신들께서 수동분무기로 뿌린 농약이 날아들 것 같진 않았다. 특히 서천군에는 국립생태원이나 해양생물자원관, 조류생태전시관 등이 소재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생태도시로 관리되어 온 지역이라 산업시설이나 공해를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서천 내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이름난 산동네에 있긴 하지만, 지내다 보니 군산, 익산, 전주 등 큰 도시들도 가까워 문화생활을 하거나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어렵지도 않았다.

3년전, “주작물은 무엇으로 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채소를 다 심어 자급자족 할거에요.”라고 대답했던 스물 아홉 철없던 새내기가 이제는 제법 농사로 먹고 살 수 있을 법한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물론 언젠가 내가 먹는 모든 채소와 과일을 직접 생산하겠다는 꿈은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봄부터 가을 내내 생산이 가능하도록 짜 놓은 계획에 따라 산에는 3년생 호두나무와 블루베리 묘목이 자라고 있고, 마을 어르신께 장기 임대받은 농지에 세운 허브 농장에서는 향기로운 허브채소가 자란다. 삼방리 농장에서 더운 여름 고추 줄을 매며 나중에 농부가 되더라도 시설하우스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운명의 장난인지 허브들이 시설하우스 안에서 크고 있다.

시골에서 살 집과 일할 농장은 아직도 다 지어지지 않아 매일 매일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귀농 과정이 꼭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는 까닭에 거주할 집의 건축 방법, 일정이 완전 달라졌고 농장 규모, 자금 계획도 처음 계획했던 것과 똑같이 진행된 것이 거의 없다. 많은 장애물이 있었던 반면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기적 같은 행운이 있었다.

나는 지금 직접 일군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양한 나무들, 수많은 종류의 허브들처럼 다채로운 일들로 가득한 시골에서의 삶이 참 행복하다. 삼십대, 인생의 황금기에 농부가 될 수 있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