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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는 오천년이 아니라 만오천년의 것이다(1)
흙살림 조회수 735회 14-03-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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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는 오천년이 아니라 만오천년의 것이다(1) 
 
 
지난 1997년부터 2001년 사이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소로리 볍씨”와 관련하여 한반도 벼 재배의 역사에 대해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정혁기 부소장이 발표한 “나의 역사는 오천년이 아니라 만오천년의 것이다”라는 글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농경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쌀밥을 먹으면서 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밥 먹는 것은 아주 단순히 보면 고픈 위장을 채우는 한 끼의 식사일 뿐이다.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예전엔 '밥을 남기면 천벌을 받는다'는 등 밥의 귀중함에 대한 수많은 '설교'가 있었고, 그래서 밥을 남기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범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런 설교를 듣는 것은 드문 일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필자의 아이들도 이렇게 말하곤 한다.
"또 그 소리야!"
최근엔 먹든, 남겨서 버리든 무조건 쌀을 많이 소비해줘야 농민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도 많이 확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밥의 귀중함'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라면 불교의 수행승일 것이다. 아직도 그들은 그릇에 밥풀을 남기는 것은 고사하고 식사를 마친 그릇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 마시는 것으로 식사라는 행위를 끝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은 밥을 남기지 말라는 '설교'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쌀 여행'을 이왕 떠났으니 우리가 하루에 몇 번씩 마주하는 쌀이 한반도에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글의 목적은 '쌀의 고향'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쌀은 벼의 열매, 즉 볍씨의 껍질을 벗긴 것이다. 따라서 이 여행은 벼(O. sativa)의 기원을 쫓는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 벼 재배의 역사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주위 몇 사람들에게 '소로리 볍씨'를 아느냐고 질문을 던져 보았다.  "소로리볍씨? 그게 뭐지.”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어떤가. '소로리 볍씨'를 아는가. 그렇다면 이 글은 읽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필자는 지금부터 '소로리 볍씨'에 대해 이야기할 터이니까.
 한반도에서 쌀을 먹기 시작한 것은 학계의 정설로는 길어야 5천 년 전을 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물, 탄화미들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
 -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유적의 이탄층에서 발굴된 벼 껍질의 탄소연대 측정 4천500∼5천 년 전(1991년).
-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 가산리를 중심으로 한 한강 하류 주변의 이탄층에서 출토된 벼는 약 4천 년 전(1991년).
-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한강변 유적 탄화미는 3천 년 전(1977년).
- 평양시 호남리 남경 유적지 탄화미 3천 년 전.
- 충남 부여군 송국리 2천6백 년 전(1974년).
- 경남 김해 유적지 탄화미 2천100 년 전.
 그리고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벼는 중국을 통해 전래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어디서? 벼는 1만년 이전에 아시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어 왔는데 그 기원지로는 인도의 아삼, 미얀마 및 라오스의 북부를 거쳐 중국 운남성에 이르는 지역이 꼽힌다. 이 지역은 아열대 몬순 지역으로 벼가 자라기 좋은 자연환경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벼와 탄화미 등의 유물로도 증명되어 왔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가장 오랜 것은 중국 옥섬암 유적이다. 중국 호남성 옥섬암(玉蟾岩) 유적과 강서성 선인동(仙人洞) 동굴에서 발견된 벼는 각각 1만 1천년, 1만 5백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앞의 두 지역 외에도, 중국 쯔장성 유야오의 허무뚜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6000-7000년 전), 허난성의 황하지역(4500-5200년전), 후베이성 탄화미(4500년전) 등이 있다.
이런 탄소연대 측정법 등에 따르면 한반도에 이르는 '벼의 길(rice-road)'은 중국 양자강과 산동성을 거쳐 서해바다로 통하거나, 요동을 거쳐 한반도 서안과 동북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자강 유역에서 바다를 건너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전해졌다는 학설도 있다.
 한편 우리처럼 쌀이 주식인 일본에서도 '벼의 길'을 쫓는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현재까지의 정설은 한반도를 경유하거나 남부 큐슈지역을 통해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인데 그 시기는 대략 3천년 전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간략히 벼의 기원과 한반도에 전래된 ‘벼의 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같은 학설들은 2002년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무려 1만5천년 전으로 '확인'된 볍씨가 한반도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글 : 정혁기(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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