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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고품격 국가의 조건
흙살림 조회수 347회 14-03-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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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고품격 국가의 조건
현의송<농산어촌어메니티연구회 회장,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소장>
지난 설날연휴 마지막 날 우리는 600년 전통의 국보 1호 숭례문을 화재로 잃었다. 화재 현장을 생중계하는 TV화면으로 불길에 휩싸이고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기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숭례문 전소 바로 다음날 관리감독기관인 문화재청은 3년의 기간과 200억 원의 돈을 투입하면 숭례문 복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붙잡힌 방화범도 현장검증을 하는 자리에서 “복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주무관청과 범인이 너무나 쉽게 숭례문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문화나 문화재를 물질적 가치로 계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문화재는 오랜 역사 속에 이뤄진, 국민의 총체적 혼의 결정체이며 상징인데도 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문화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두 선각자는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부자인 나라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고품격의 문화국가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편 영국의 처칠 수상은 “셰익스피어를 잃느니 인도를 버리겠다”고 설파했고,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는 “강대국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높은 수준의 문화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물질적 풍요보다 고품격의 문화와 정신을 중요시하는 것은 동서양 위인들의 공통된 사상이고 철학이다.
우리는 평소 ‘문화’라는 말을 쉽게 접한다. 새 정부도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한반도 전체를 새롭고 아름답게 디자인할 것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시는 ‘문화중심도시’를 선언한 바 있다. 물질의 풍요보다는 문화가 있는 국토로 새롭게 디자인 하겠다는 포부로 보인다.
문화는 영어로 ‘culture’인데, 이는 ‘경작(耕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농업은 ‘agri-culture’로 표현되며 ‘땅을 가는 것이 농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도 대부분 농사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농업이 있는 곳에 문화가 있고, 농업이 발전해야 우리의 고유문화도 찬란하게 빛난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5년 이내에 3만 불 소득을 달성할 것이고, 고품격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인당 3만 불 소득은 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득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곧바로 고품격의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수학교수 <후지하라>는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에서 고품격의 국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할  네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군사적인 독립은 물론 식량도 어느 정도 자급자족해야 한다. 둘째, 높은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 셋째, 아름다운 전원경관(amenity)을 유지해야 한다. 넷째, 천재가 많이 배출되는 국가라야 한다(아름다운 전원경관이 있는 곳에서 천재가 많이 배출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고품격 국가의 요건은 결국 농업으로 연결된다. 농업이 있어야만 문화와 전원경관을 유지할 수 있고, 식량 자급이 가능하며, 천재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폭등하는 국제 곡물가격을 보면 식량안보의 필요성과 함께 농업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농업은 고품격 문화국가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작년 말 필자의 안내로 서울 근교를 둘러보고 돌아간 일본인 교수와 농촌지역 공무원이 편지를 보내왔다. “서울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을 보니 한국이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급속히 물질 우선의 사회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한국의 경제가 더 발전하면 물질만으로는 품격 있는 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번 잃어버린 농산촌의 자연경관과 문화는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여행객 몇 명의 시선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새겨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우리의 얼과 자부심이 서린 숭례문은 금전적 가치에 상관없이 복원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숭례문 못지않게 황폐해진 우리 농업과 농촌도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 식량 자급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통 문화유산 보존을 담당할 농촌이 있어야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고품격 문화국가로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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