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보기 기부금내역
농업동향

페이지 정보

지켜주지 않는다고 농업이 없어질까
흙살림 조회수 313회 14-03-21 21:28

본문

지켜주지 않는다고 농업이 없어질까
이태근(흙살림 회장,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
 지난 3월 20일 농림부와 해양수산부가 개최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했다.
“농업도 시장 안에 있다. 경쟁력이 없으면 농업도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다. 그 예로 농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22조 정도인데 농업에 투자하는 투융자 예산이 15조이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을 계속 지켜달라는 것은 문제다.”
우리 농민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 경쟁력 있는 산업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반도체, 자동차를 제외한 산업 중에, 농업만이 경쟁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금융, 의료, 교육 등을 포함한 대부분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분야는 어디 있을까? IMF 당시 금융 등 경쟁력 없는 분야를 살리기 위해 쏟아부은 국민의 혈세는 과연 얼마이며, 그렇게 살려 놓은 산업분야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갔을까?
농업부분만 경쟁력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하층 천민집단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농부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농업도 사람과 돈과 국가의 지원이 있다면 엄청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많이 쏟아 붇고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 그 많은 돈이 농업이 아닌 농업주변 산업으로 새나가고 제대로 뒷받침되는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해 낭비만 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농민들의 생각이다.
농업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새로 짠다면 농업부문도 지금의 다원적 기능에 더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을 산업의 제일 우선의 위치에 놓는 일이 먼저다. 노무현 대통령은 350만 농민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경쟁력의 잣대로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문제가 많다. 경쟁력이 있다 없다로 따지면, 결국 경쟁력이 없다면 먹는 것을 포기한다는 얘기와 똑같기 때문이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을 포기할 것인가? 청와대의 식단을 수입농산물로 다 바꿀 생각인가?
농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변화해야 한다. 어느 소비자 단체 대표가 대통령에게 건의한 말 중에 농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 놀랐다. 서울에 사는 소비자단체의 대표는 중산층 정도의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값이 비싸 한우 쇠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한우 쇠고기가 일본보다 2.5배 비싸다고 대통령도 맞장구를 쳤다. 마치 농민들이 한우를 키워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상황을 잘 따져 실상을 제대로 본 후 얘기해야 한다.
우리 농민들이 진정으로 수입 쇠고기를 반대하는 이유는 쇠고기 가격을 보장받기 위함이 아니다. 농민들이 단식을 하면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조류독감을 막기 위해 수십 만 마리의 닭을 왜 죽이고 있는가? 그 끔찍한 장면을 TV로 보고도 왜 놀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광우병 위험에 노출돼 있는 미국산 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관대한가? 식품의 안전을 신조로 여기는 소비자 단체 대표가 그런 인식으로 쇠고기 수입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리 농업의 미래는 영원히 기대할 수 없다. 화가 나고 정말 슬픈 일이다.
쇠고기 수입반대는 고기를 비싸게 팔려고 하는 자기 이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광우병의 피해로부터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자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을 제발 알아주면 좋겠다. 한?미FTA와 미국산 수입 쇠고기반대는 농민들의 자기 집단이익을 위해 외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농민들이 외치는 함성은 국민들 먹을거리를 책임진 당사자로서 소명의식 같은 것이다.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민이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을 것을 알고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좋을까?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농업정책은 무엇인지, 농업이 왜 경쟁력의 잣대로 보면 안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농민을 천시 하는 사회 인식이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건 또 소비자와 농민에게 맡겨두고, 국민 건강을 위해 어떤 농업정책을 펼치면 좋은지, 생각 있는 농민들 목소리 듣기를 게을리 하지 말기를 바란다.
억하심정이 쌓여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농민들이 많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 대화하면 얼마나 경제논리로만 농업을 바라보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농업, 지켜주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먹을거리가 존재하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2007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