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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길을 묻다 005
박석준(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나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공자에게 있어서 나는 끊임없이 인仁을 실천해가는 나였으며 인의 실천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허물[과過. 지나침]을 좋게[선善] 고쳐나가는[극克], 곧 개선改善해나가는 나였다. 여기에서 ‘선善’의 원래 글자 ‘선?’(착할 선)인데 이는 羊(양 양)+?(다투어 말할, 말다툼 할 경)이 합쳐진 글자다. 공동체에서 생산된 것을 분배하는 데에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을 잘 처리하여[공교工巧, skillful] 모두가 만족하게 되었기 때문에 빼어난 것[고명高明]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에 딱 알맞은 것이 선이다.
한편 양주의 나는 욕망하는 나였다. 이 욕망은 춘추시대의 높아진 농업 생산력 수준과 잉여의 증가, 분배를 둘러싼 갈등, 잉여인구의 탄생(유민流民이나 도盜의 출현)이라는 시대적 변화에서 나온 것이었다. 춘추전국 시기는 씨족 공동체가 해체되고 대신 소농민小農民 경영이 정착되고 보편화되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씨족적 질서 속에 매몰되었던 개인이 해방되어 자유로운 계약관계를 맺기도 했고 사유에서도 주술적이고 신정적神政的인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이성구, ?춘추전국시대의 국가와 사회?, ??강좌 중국사??1). 이제 선善의 조건이 바뀐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투어 말해야 했다.
공자는 선 자체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예禮를 말함으로써 선, 궁극적으로는 인仁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했다. 그런데 원래 공자의 인식과 실천은 극기와 온고(溫故.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것. 곧 이성이라는 관념이 아닌 현실의 대상에 기초한 연구) 또는 박학(博學. 끊임없이 앎의 영역을 넓혀나간다)이라고 하는 열린 방법론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외적 규정으로서의 닫힌 체계인 예를 도입함으로써 모순이 생기게 된다(정명正名 역시 닫힌 체계다).
반면에 맹자는 예라고 하는 외적 규정보다는 의義를 말함으로써 내적 구속을 강조했다(리링, ??논어 세 번 찢다??). 원래 ‘의’ 역시 공동체에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의 마땅함을 뜻한다(??釋名?? 義, 宜也. 裁制事物, 使各宜也). ‘의’의 갑골문은
인데, 공동체 내의 배반을 응징하는 창[아我]과 제사의 희생犧牲으로 쓰이는 양羊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선’이 말에 의한 판단임에 비해 ‘의’는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한 죽임[살殺]까지를 포함하는 마땅함이다(신정근, ??사람다움의 발견??). 그러므로 의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외적인 것이다. 곧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죽음을 담보로 나에게 외적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의가 내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공자는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사람의 본성은 다 비슷하다는 지적은 있다). 또한 인仁이 본성인지 아닌지도 말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것이 내재적인지 외재적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일견 공자의 인은 내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언행, 곧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나는 것이며 그러한 외화-실현 과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외재적인 것이기도 하다. ??논어??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여러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공자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내가 나서고 싶으면 남을 내세우라거나[仁] 내가 바라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恕]는 등, 모두 자기의 양심에 충실한 태도를 남에게까지 확장해나가라고 하였지(이현구) 내 안의 인을 파고 들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자에게 인이나 의는 내재적인지 외재적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였고 잘못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고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때 아마도 공자에게 도덕의 기초로 세워진 것은 편안함[安]일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공자의 도덕적 기초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이 편안함은 맹자에게서는 차마 그러지 못하는 불인不忍의 개념으로 바뀌어 사단칠정으로 발전한다).
줄리앙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유가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천명에서부터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는 입장(??중용??과 ??주역??)과 인간의 체험(감정), 예를 들어 동정심이나 수치심 같은 것에서 출발하는 입장(맹자)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출발은 다르지만 둘 다 도덕에 관한 의식이 내재적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같다. 공자에게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천명이라는 측면에서는 지천명知天命 이후 공자가 하늘을 어려워했다[외천명畏天命]는 점과 감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편안함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순일 수도 있는 공자의 이러한 관점, 곧 열린 방법론과 닫힌 체계 사이의 모순, 천명과 인간의 감정 사이의 모순은 상주商周 교체기에 나타난 천명과 덕의 관계, 곧 상나라를 정복한 것이 천명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하늘이 덕이 있는 자에게만 부여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 하늘의 덕은 세습된다고 하는 주나라의 자기모순이 춘추시대에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일 것이다(공자는 주나라를 따르겠다고 했다). 맹자는 바로 이런 점을 극복하려했지만 그 해결책을 일차적으로 마음에서 찾았기 때문에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착한지 악한지를 따지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래서 고자告子와의 무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