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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 뜨거운 사랑과 꿀잠
흙살림 조회수 432회 17-07-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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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절기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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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大暑), 뜨거운 사랑과 꿀잠

대서(大暑)는 열두 번째로 절기로 양력 7월 23일입니다. ‘염소뿔도 녹는다’는 폭염과 ‘장마에 돌도 자란다’는 비와 초록 생명들이 뒤엉켜 들끓는 ‘뜨거운 사랑’의 기간입니다. 비유컨대 태양과 초록 대지와 비가 뒤섞이면서 가장 역동적인 생명의 시간, ‘혼돈 속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역동성을 시인은 “물은 흙이 되고/ 흙은 물이 되며/ 풀은 삭아서 반딧불이 된다”(강웅순「대서」에서)고 연금술적 표현을 합니다. 물이 물로 그치지 않고 인연을 다하여 가장 생산적이 토용(土用)의 흙으로 되고, 흙이 흙으로 고립되지 않고 역시 자기의 인연을 다하여 물의 일을 하고, 그래서 자란 풀이 ‘반딧불’로 변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초록사랑의 시간입니까? 이 뜨거운 사랑만이 창조적 변화를 일으켜 여름 과일과 채소들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감자나 옥수수가 나간 밭에 후작을 합니다. 주로 콩이나 깨 같은 잡곡류나 단기간에 자랄 수 있는 채소류를 심습니다. 워낙 뜨거운 사랑이 때의 일이듯 농부님들도 일로 몰아칩니다. 물론 무진장 덥습니다. 얼마나 덥냐 하면, “비닐하우스에 시금치 씨를 뿌리고/ 복토를 하는데/ 땀이 얼마나 나는지/ 몸을 흘러/ 빤스를 펑 적시고/ 바지 타고/ 장화로 고여/ 움직일 때마다 미끄덕/ 찌럭찌럭 소리가” 날 정도입니다. 대서는 그처럼 염천의 하늘을 등에 지고 모든 존재자들이 자기의 노동으로 뜨거운 사랑을 하여 누군가의 양식과 그늘을 만드는 때입니다. 그 노고를 위해 꿀잠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습니다.

 

낮잠

                                    -오철수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부랴부랴 콩 모종 심고

물 말아 간신히 밥 먹는다

정자 앞 연꽃 보며

백년은 깊게 담배 한 대 뿜으니

그냥 누워진다

눈 저절로 감긴다

여전히 꿈도 없는 땡볕 고요

파리가 극성이어도

잠이 주무신다

한 짐 몸 부려놓으시고

 

뜨거운 여름날 노지露地에 작물을 심을 때는 비가 모든 걸 결정합니다. 비가 예보되면 만사 제쳐두고 모종부터 한 번에 다 심어야 합니다. 그 때를 놓치면 얼마를 더 기다릴지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입맛조차 없어집니다. 그래서 “물 말아 간신히 밥 먹”습니다. 누구에게 들은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죽을 때야 비로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물맛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 맛으로 밥을 먹으면 몸이 그냥 누워지고 눈이 저절로 감깁니다. 자고 말고 할 의지적 주체인 내가 없습니다. 잠이 주무시는 것입니다. 몸은 그를 도와 자신을 부려놓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잠이야말로 생명의 기쁨을 아는 꿀잠입니다.

그런데 이런 잠을 잘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 대서의 ‘뜨거운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