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하지(夏至), 밤꽃내와 농사일이 절정을 이를 때

하지(夏至)는 24절기 열 번째로 6월 21일입니다. 여름이 지극해지는 때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량도 가장 많을 때입니다. 밭작물도 쑥쑥 자라지만 잡초는 더 잘 자랍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하지 감자 잎이 시들어 주저앉는 사이에 풀들이 순식간에 덮어버립니다. 고구마밭이나 양배추밭도 하루 이틀 하다보면 금방 풀밭이 됩니다. 그러니 긴긴해와 더불어 사람의 일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는 속담처럼 논일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이맘때 산은 밤꽃이 뒤덮고, 논은 개구리울음으로 가득합니다. 밤꽃의 아주 특별한 냄새와 소만(小滿) 이후 점차 차오르는 대지의 생명들과 인간의 노동이 절정을 이루는 때!
시인은 다음처럼 노래합니다.
유월
-고재종
집집마다 단내 훅 끼치는 마을의 밤
엉머구리떼는 또 그렇게 울어라
욱신욱신, 온몸의 타는 관절들을 쑤셔대며.
밤꽃 향기에조차 씻긴 하늘은
칠흑 속 가득 별밭을 일구는 것이다
서걱서걱, 지상의 땀방울들을 죄 거두어.
이런 날, 저 뒷산 밤밭에
벌러덩 누워버리던
그 가장 천연덕스런 여자의 발정이더라니.
‘단내’는 ‘몸의 열이 높을 때 입이나 코 안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입니다. 집집마다 힘든 농사일로 단내 훅 끼치는 밤입니다. 성한 몸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욱신욱신, 온몸의 타는 관절들을 쑤셔대며” 개구리도 웁니다. 밤이 되면 아예 동네 앞산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일제히 울어댑니다. 또 칠흑 하늘, 그 투명한 어둠속에는 별들이 가득합니다. 그 풍광은 노동의 땀방울과 대지의 초록생명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만드는 것, “서걱서걱, 지상의 땀방울들을 죄 거두어”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날, 하늘을 향해 벌러덩 뒤로 자빠져 발정을 일으켜도 죄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적인 윤리도덕은 하늘이 노동으로 다 추렴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보상이듯 밤꽃내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아직 덜 생명을 채운 대지가 있다면 더 발산하듯이 채우라고. 그래서 시인은 “이런 날, 저 뒷산 밤밭에/ 벌러덩 누워버리던/ 그 가장 천연덕스런 여자의 발정이더라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바로 유월이라는 대지의 여신이고, 아직 생명은 더 차올라야 한다고 개구리 울고, 그렇게 하려면 더 노동해야한다고 밤꽃내 가득한 밤입니다. 흙살림농장은 올해 토종자색감자를 심었기 때문에 하지감자를 심었던 작년보다 열흘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러건 말건 불붙은 개구리소리/ 유월 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오철수 「개구리에게 덕담하다」에서) 올해 흙살림연구소는 아시아 여러 지역에 유기농법을 돕기 위해 다닙니다. 거기도 개구리소리가 이럴지 이태근 대표에게 묻는다는 것을 까먹고 농장은 곯아떨어집니다.
- 오철수(시인. 문학평론가. 흙살림농장농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