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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서 두고두고 먹는다고 "만두"
흙살림 조회수 650회 15-02-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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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서 두고두고 먹는다고 만두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만두를 빚던 섣달 그믐날의 장면이 한 장의 사진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온가족이 모여 앉아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며 만두를 빚으면서 새해 소망을 말하기도 하는데, 배고프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가족들 몰래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만두를 하나 만들어 섞어 놓으셨다. 새해 첫날 그 매운 만두가 누구의 그릇으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아침상을 앞에 두고 앉아 가족 모두가 크게 한 바탕 웃으며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를 만두와 함께 즐겼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있어 만두는 하나의 음식을 넘어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특별한 시간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타임머신 같은 존재이다. 특히 한 해가 저물고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보는 요즘 같은 때가 되면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만두를 잔뜩 빚어두어야 할 것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충혜왕 4년의 ‘왕궁의 주방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 먹는 자를 처벌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만두를 먹기 시작한 때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그 당시에는 밀가루를 술로 발효시켜 쪄내는 지금의 찐빵과 비슷한 것으로 상화(霜花)라고 불렀다. 만두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지만 밀가루를 발효시켜서 만들어 먹는 중국과는 달리 현재의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발효시키지 않고 반죽을 해서 바로 만두를 빚어 먹는다. 우리는 또한 만두를 굽거나 찌는 방법을 넘어 만둣국으로 발전시켰지만 상식(常食)하는 중국과는 다르게 특별한 날이나 별식으로만 만두를 먹는다.
만둣국은 육수에 만두를 넣어 끓인 음식으로 요즘은 지역이나 계절과 무관하게 즐겨 먹고 있지만 이북지역에서 정초에 즐겨먹던 절식(節食)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고향이 황해도인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외조부의 식성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 집에는 겨울에 만두가 떨어지지 않고 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만두가 떨어지지 않고 밥상에 올라온다는 얘기는 집안의 여자들이 쉴 시간이 없다는 말과 다름 아닌데 외조모나 친정어머니의 고생이 여간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만두는 재료와 모양, 익히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만두를 빚는다고 해도 빚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양과 맛이 나오므로 만두는 집집의 개성이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음식이 아닌가 한다. 한 끼 식사를 대신하는 주식이 되기도 하고, 출출한 저녁의 수험생 간식이 되기도 하고, 술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안줏거리가 되기도 하고, 손님이 오면 특별하게 내놓는 접대용 음식이 되기도 하고, 잔칫날에 나오는 잔치음식이기도 한 것이 만두이니 어쩌면 재료나 모양에 관계없이 만두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팔색조와 같은 음식으로도 말 할 수 있겠다.